6, 생활에 대한 지조(志操)와 청백(淸白)의 길
「선비를 죽일 수는 있지만, 그들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士可殺[불가살], 不可辱[불가욕])」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선비들의 지조와 청백정신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 자제들에게도 항상 가르치기를 「선비는 지조를 지키는 일이 으뜸이라, 선비의 지조가 한번 꺾이면 돌이킬 수 없다.」고했다. 옛 글에 「선비는 나라의 으뜸되는 기력이라고 하였으니, 과연 어떤 것을 선비라 할 것인가.」이에 대하여 맹자는 「항상 일하는 산업이 없어도 항상 가지는 정신을 지키는 이는 오직 선비라야 할 수 있다.」고하였다. 옛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선비의 정신을 가지는 이는 그 굳은 마음이 강하여, 「많은 군사들의 감투정신은 빼앗을 수 있지만 한 선비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한다. 사임당 역시도 남자 선비에 못지 않은 여 중 선비였다. 그래서 자녀들 가르침에 「청렴은 햇볕이 쬐는 면이요, 탐욕은 그늘진 곳이다. 청렴이란 갖가지 선행의 원천이요, 덕 행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깊은 지혜를 가진 선비로서 청렴을 교훈삼고 탐욕을 경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고하면서 자녀들에게 명예와 이익에 밝아서는 아니 되고, 항상 몸을 깨끗하게 지나도록 했다. 또한 사임당은 우리나라 역사를 가지고 와서 율곡 형제들에게 정몽주의 단심(丹心), 사육신들의 그 참혹한 상황을 능히 이겨낼 수 있었던 지조를 매창(梅窓) 여형제들에게 청한정절(淸閑貞節)의 덕과 효부,열녀들의 행적을 가르쳤다. 또한 자제들에게 항상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죽은 짐승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말은 그 자제들이 아무리 가난에 쪼들리더라도 자조와 청백의 의연한 태도를 지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 자신의 생활도 언제나 맑게 바르게 살아오면서 특히 부정에 대해서는 그 성격이 대쪽같이 날카로웠다. 그러했기 때문에 항상 그 자제들에 가르친 것이 「곧고 옳고 바르게 살아가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뒷날 그 자녀들에게 크나큰 교훈이 되었다.
그러기에 율곡은 우리나라 역사상에 으뜸 가는 청백리가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